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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image   artist colon 박생광()
Park, Saeng Kwang
   
penname colon 내고(乃古)
field colon 한국화가
born colon 1904
deceased colon 1985.7.18
place colon 경상남도 진주
homep colon
 
“그림이란 남에게 가르칠 수도 남의 것을 배울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래서인지 인도를 다녀오고부터는 저 세상에 가더라도 영생으로 이어지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네” 라고 말한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도 생소한 화가 박생광이다. 그는 스스로 영원한 야인으로 살아간 나그네였다. 일본 미술에 영향을 받긴 했으나 그것을 뛰어넘어 아시아성과 범세계성을 추구했으며, ‘한국그림’ 나아가 ‘우리그림’을 일궈 내겠다는 그의 꿈은 현란한 색채 속에 진홍빛 불꽃으로 타올랐다.

박생광은 自號를 1950년대부터 ‘又堂’, 1960년대에는 ‘乃古’, 1983년대부터는 ‘그대로’라 하였으나, 말기에는 ‘그대로’라는 순 한국식의 호를 즐겨 사용하였다. 순 한국식의 호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인생 그대로, 자연 그대로, 예술 그대로라는 본연의 삶을 체험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1920년대 박생광은「京O市立繪畵學校」에서 새로운 유형의 일본화를 지도받으면서 새로운 원근법 그리고 극사실적인 묘사로서 일본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점차 정착시키고 있었다. 그가 23세가 되는 1926년에는 오치아이 로우후우(1896~1937)의 문하에 들어가 근대 일본화를 익힌다. 이때 박생광은 오치아이 로우후우로부터 극사실주의를 도입하여 화면을 평면화시키고 원근감을 색채로 표현하며 맑고 밝은 색채를 쓰는 화풍을 익힐 수 있었다. 또한 고우쿠라 센진의 초수사에 기거하면서 현대 감각의 일본화와 강렬한 채색, 불교 벽화제작의 스케일과 색감들을 접하며 배웠다. 1930년대 초의 작품경향은 일본의 현대적인 조류를 접하면서도 전통적인 회화기법이 그대로 나타나는데 그의 작품세계가 신일본화의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35년 이후부터이다. 1944년 말에 귀국을 한 그는 일본적 성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해방 후 민족예술의 형성과는 거리가 먼 색을 배척하는 일관된 수묵위주의 성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5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즐겨 사용하는 淡墨에 의한 투박한 양식으로 無遠近의 채색법과 함께 眞彩형색의 赤, 黃, 綠, 靑色의 주조가 된 박생광만의 화풍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淡墨의 線은 바로 후기에 나타나는 주황색 線의 시발이었던 것이며 색상 또한 노색에 이르러서도 즐겨 사용했던 원색적 색채로 연결 지어지는 일련의 계통성을 맺고 있는 것이다. 60년대로 접어들면서 박생광의 작업은 서서히 수묵에서 抽象主義的인 작업으로 변환하게 되는데 이 시기엔 정치적인 안정과 서구 문화가 비판없이 유입되고 미술대학을 졸업한 젊은 세대들에 의해 현대적인 繪畵觀이 모색되어진다. 1967년 박생광은 섬세하고 감각적인 화풍과는 달리 거칠고 강렬한 터치를 특징으로 하는 채색화를 새롭게 수용하였다.

70년대 초에는 사생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이며 평면적인 양식을 볼 수 있는데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여 여백을 채워나가는 기법과 사물을 화면에 부각시켜 주제를 확대함으로서 작품의 설명을 대신하는 기법으로 발전하였다. 이런 점은 작가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 화단, 특히 傳統的인 매체를 통하여 현대를 고민하는 畵家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였다.

71세의 나이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강렬한 원색의 대비, 묵과 같은 색감, 원시적 생명의 열기와 신명을 불러내는 색채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1970년 중반부터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던 한국적인 전통 소재는 이후 점차적으로 민화, 단청, 장승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되며 한국의 정신과 얼을 조형화 하는데 성공하면서 종래의 일본화적 경향에서 탈피하려는 의도가 짙어졌다.

박생광은 1980년대 이후 무당과 무속, 샤머니즘을 주제로 작품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 박생광은 후두암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화판을 놓지 않는 精神力을 발휘한다. 그는 자신의 생애가 조금만 더 연장 될 것을 갈구하면서 단군, 이순신, 전봉준, 안중근 등 역사화를 계획하였으나 「명성황후」와 「전봉준」만을 완성한 채 1985년 7월 82세의 일기로 타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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